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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었습니다./에세이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본관은 청풍으로 알려져 있다.

1남 5녀 중 여섯째인 막내로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994년 문선대 사회자를 데뷔하였고 1999년 우방랜드 영타운 진행자,
각 대학의 오리엔테이션 강사, 축제 진행자를 거쳐 가수
윤도현과의 인연으로 2002년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하였다. 2006년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사실 김제동이라는 사람을 잘 모릅니다. TV에서 여러 예능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아서 진행하고 입담이 좀 있는 사회자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트위터에서 그리고 최근 뉴스에서 그의 발언으로 이슈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책은 김제동이 여러 사회의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그것을 편집하여 출간한 책인데요.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하고 소통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흥비를 느끼고 내가 몰랐던 각계의 사회의 인물들도 알게되어서 좋았습니다.


이책의 주제를 굳이 찾는다면 '사회 여러방면의 사람들과의 소통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 정도 일것 같습니다.


그가 소개한 여러 인물 중 내가 평소 잘 모르고 관심을 갖지 않은 인물들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정연주

경상북도 월성군 (현 경주시) 에서 출생하여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미국 휴스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2005년 4월 8일 ~ 2006년 3월 31일까지 12대 한국방송협회회장을 역임하였고, 2007년 4월 2일 ~ 2008년 3월 28일까지 14대 한국방송협회장을 역임하였다.


KBS 사장 시절

노무현 정권에 의해 임명된 서동구 전 사장이 낙하산 논란으로 KBS노조와 사원의 반발에 의해 사임한 후 2003년 4월 28일 시민과 언론단체의 추천 공모에 의해 한국방송공사 사장에 임명되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가 통과되자 탄핵 특집 방송을 편성하였는데, 탄핵 찬성 측에서는 이 특집 방송을 탄핵에 반대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옹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편파방송을 하였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2006년 11월 연임에 성공하여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도 계속 사장직을 수행하였다.

KBS 사장 이후

하지만 재임 동안 세금환급 소송을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여 조기에 끝냈다는 적자경영 이유와 2008년 6월 11일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받게 되었고, 민주당과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인사들은 이를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음모라고 강력히 비난하였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8월 11일 이명박 대통령은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였는데, 이와 관련 대통령이 KBS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정연주는 자신의 해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였고, 2008년 8월 20일 서울행정법원이명박 대통령의 해임 처분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며 신청한 해임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으며 2008년 8월 22일 서울남부지법은 KBS 이사회 결의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였다

검찰의 배임 혐의 기소

2009년 8월 18일,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이규진 부장판사)는 검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에는 3가지의 쟁점이 있는데, 그 쟁점은 검찰이 기소했던 근거였다(괄호 안은 검찰 측 주장).

1. 법인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의 최종 승소 가능성(1심 판결 상당히 유리했으므로 상급심에서도 이길 가능성 높아)
2. 한국방송공사(KBS)가 받아들인 조정안의 합리성(재판에 이기면 받을 수 있는 2448억원 포기, 조정으로 1892억원 손해 끼쳐)
3. 연임을 위한 목적(노조에서 책임 묻던 상황에서 서둘러 국세청과의 조정안 합의)

그러나 법원 측은 이 모든 검찰 측 주장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반박했다.

1. "정 전 사장이 조정을 선택한 것은 정상적인 경영 행위에 해당한다.", "KBS는 법원의 권고하에 장기간 국세청과 상의하고 의견을 조율했으며 1년 넘게 내·외부 전문기관에 자문을 구하는 등 조정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했기 때문에 경영부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배임죄라는 검찰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KBS는 1심에서 16건 중 9건은 승소했지만 7건은 패소해 일방적으로 우세에 있었다고 보기 힘들다."
2. "1심에서 승소했기 때문에 상급심에서도 KBS의 승소가 매우 유력했다는 검찰 주장 역시 판결 선고 전까지 예측 불가한 재판의 특성 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하지 않다."면서 "통상 법원에서 행해지는 조정 실무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정 이 나오는 경우는 발생할 수 없다."
3. "노조가 당시 정연주 KBS 사장 시절 사장 퇴진을 직접적으로 요구했다고 단정 못한다."

그 외에도 법원은 △정 전 사장이 독단적으로 조정에 응한 게 아니라 자문과 내부 검토를 거쳤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국세청이 다시 세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공기업인 한국방송이 과세관청과 장기간 다투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등의 판단 배경도 열거했다.

재판부의 무죄 판결이 이루어짐에 따라 검찰 측은 항소를 하겠다고 밝혔다

해임처분 무효 청구 소송

2009년 11월 12일, 연합뉴스의 기사를 인용 보도한 한겨레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 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무효 청구 소송에서 "해임처분을 취소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에게 일부 사유에 대해 경영상 잘못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해임사유로 인정되지는 않는다"며 "해임처분에 있어서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고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 보여 KBS 사장 해임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도문에서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KBS 사장으로 복귀할 수 있지만 임기가 11일밖에 남지 않아 복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박원순


경남 창녕군 출신으로 1974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1979년 졸업하였다.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대구지검에서 1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다 80년대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 처장으로 재위하면서 부패정치인 낙천낙선운동, 소액주주운동, 국가 보안법 폐지 운동 등 사회적 민주화 곧 민주주의의 사회적 실천에 기여했다.

아름다운 가게

2000년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1% 나눔,기부운동과 더 나은 대안적 사회를 만들기위한 노력에 앞장섰다. 2001년 아름다운가게를 설립 2006년 부터 2009년 까지 아름다운가게,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를 지냈으며 2006년 만해대상,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였다.

신영복


생애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수감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고 2006년말에 정년 퇴임하였다. 퇴임 당시 소주 포장에 들어가는 붓글씨를 그려주고 받은 1억원을 모두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하였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하고 있다




감옥 생활

육사 교관으로 장교였던 신영복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된후 충격을 받고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그 고뇌와 사색은 20년내내 이어져 완전히 '인간성이 개조'되는 내적 자기혁명을 이루어 낸다. 신영복은 교장의 아들로 성장하여 민중의 삶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남다른 애착은 없었다.그런데 감옥에서는 밑바닥을 살아온 기층민중과 24시간을 맨살을 부대끼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통해 자신이 지식청년으로서 가지고 있던 창백한 엘리트주의적 관념성과 '먹물성'을 통절히 비판하고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의 삶은 서로가 알몸으로 부대끼며 가식없이 숨김없이 사는 탓에,한방에서 오래 살다보니 서로의 과거와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번은 목수출신이 집을 그릴때 지붕부터 그리지 않고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책이나 이론으로 배운 세계가 현실과 완전히 다를 수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인식틀을 깨부순 것이다. 무엇보다 10여년간 교도소에서 노동을 하면서 목공, 영선, 제화공, 재단사등으로 직접 노동자 생활을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의 인간 개조론을 수긍하지 않을 수없게 한다.

특히, 감옥에서의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남은 이후 그의 사상과 인생관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지 않을 수없었다. 막연하게 책에서나 보아온 분단과 전쟁의 피투성이 현대사의 이야기를 직접 이를 경험한 빨치산과 투사들을 통해 생생히 들음으로써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화석'처럼, 살아있는 역사체험을 한다. 또한, 한학자 출신의 사상장기수로부터 동양고전과 철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서구사상에 매몰된 현실에 대한 자각과 자존을 깨닫고 고전학습에 몰입한 나머지 이후 성공회대에서 동양철학도 강의할 수 있게 된다. 신영복은 현재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다. 이도 감옥에서 여러 장기수 선생으로부터 지도받은 결과라 한다. 한문 서체로 익힌 필법은 한글에도 응용해 민중 정서에 맞게 민체, 연대체, 어깨동무체라는 글씨체를 창안해 독특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감옥 20년의 삶이 완전히 인생을 바꾼 진정한'나의 대학시절'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의 동무들은 그가 출소하자 '야,너 하나도 안변했네'라고 감탄했다 한다. 그의 삶의 철학과 신념은 변함없이 "더불어 숲"을 이루는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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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김제동 (위즈덤경향,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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